온 가족이 자려고 몸을 뉘이면 몸을 뒤척일 공간은 있을까 싶은 18만 원 짜리 반 지하 월셋집. 하지만 훈훈한 온기가 도는 아랫목에 몸이 불편해도 자식들을 아껴주는 아버지까지, 면목동에 위치한 미영이(17, 가명)네는 화목한 모습이었다. 미영이가 불과 며칠 전까지 이름도 모르는 아저씨에게 손찌검을 당하고 성폭행까지 당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4개월에 걸친 미영이의 악몽은 지난해 7월, 남동생 수민이(9, 가명)를 데리고 서울역에 놀러가면서 시작됐다.

지적장애 3급이자 해리 장애를 앓고 있는 미영이는 한 번 집을 나가면 밤 늦게 돌아오기 일쑤다. 순간순간 정신이 멍해지면 스스로도 통제가 안 되서, 한참을 걷다보면 자기가 무엇을 하기 위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그 날도 그랬다. 동생과 한참을 놀다 돈이 떨어진 미영이는 단순히 돈을 벌어야 겠다는 생각에 곁에서 신문을 보고 있던 조 모(53) 씨에게 말을 걸었다. 자신들이 신문배달로 돈을 벌 수 있겠느냐는 물음에 조 씨는 그렇게 해주겠다며, 아무것도 모르는 이 아이들을 자신이 머물고 있는 여인숙에 데리고 갔다.

그렇게 아이들을 데리고 여인숙을 전전하던 조 씨는 지난 해 8월, 구로구 개봉동에 집을 마련하면서까지 이들을 데리고 갔고 음흉한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중국 음식점에서 일하던 조 씨는 술만 먹고 들어오면 아이들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동생 수민이는 "일주일에 세 네 번은 맞았어요. 아저씨가 차고 있던 벨트를 풀러 때렸고 언젠가는 장롱 문짝에 붙어있는 쇠막대기로 다리를 맞았는데 너무 아파서 펑펑 울었어요" 라고 말했다.

맞는 게 무서웠던 아이들은 아저씨가 술을 먹는 날이면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화장실에 숨어있었다고 한다. 미영이는 "일하는 데서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우리한테 푸는 것 같았어요. 화장실 문을 잠가놓고 숨어 있으니까 빨리 열라며 마치 부술 듯이 문을 두드렸어요" 라며 진저리를 쳤다.

심지어 미영이는 조 씨에게 성폭행까지 당했다. 미영이는 일주일에도 몇 번 씩 조씨가 이불 속으로 들어올 때마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혹시나 또 때리지 않을까 무서워 저항을 못했다고 했다. 다시는 떠올리기 싫은 기억인지, 미영이는 고개까지 절레절레 흔들며 고통스러워했다.

매일 되풀이되는 악몽이었지만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너무 늦게 했다. 어려운 살림 때문에 변변한 용돈 한번 받지 못했던 아이들은, 조 씨가 하루 한 번씩 주는 만 원이 너무나 소중했고 드디어 갖게 된 인라인 스케이트는 포기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처음엔 20년 가까이 당뇨와 간경화를 앓는 아버지가 홀로 지키고 있는 집 생각이 많이 나지 않았다고 했다. 어머니는 이미 6년 전 집을 나간 상태였다.

하지만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아이들은 지난 3일, 조 씨가 일하러 나간 사이 집을 빠져나와 가까운 경찰서로 갔고 드디어 아버지에게 돌아갔다. 4개월 만이었다.

상황 판단이 모자란 아이들이지만, 자신들을 걱정하느라 몸무게가 10킬로나 빠져버린 아버지 모습을 보고는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경찰 아저씨한테 적어냈는데 아빠가 그걸 보고 계속 울었어요. 울지 말라고 나도 울었어요" 이렇게 말하면서 미영이는 또 한 번 울었다.

조 씨는 미성년자를 유인하고 성폭행한 혐의로 경찰에 구속됐지만 이들의 아픔은 한동안 잊혀지기 힘들 것 같다.

미영이 할머니 김 모(76) 씨는 "내가 눈 감기 전에는 못 잊을 일이다. 그 어린 것들이 겪었을 일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고 말했다.

CBS사회부 윤지나 기자 jina13@c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