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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10-14 08:47
 조회 : 6,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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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날, 어느 마을에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행복한 집’으로 소문난 한 집이 있었답니다.
그 집이 얼마나 유명했는지 아주 먼 곳까지 소문이 자자(藉藉)했읍니다.
그런데 그 먼 마을에는 그 나라에서도 손꼽히는 부자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 주인이 이 소문을 듣고는 그 이름난 집을 찾아 갈 생각을 했답니다.
왜냐하면,
나라 안에서도 손꼽히는 부자이고 무엇 하나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 할 수는 있어도
남들이 자기 집을 행복한 집이라 부르는 걸 들어본 적도 없고
자신이 생각해도 늘 무엇인가가 부족했고 행복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 ‘행복한 집’은 도대체 얼마나 화려하고 멋있는 집인지 보고 싶어졌기 때문이었읍니다.
어느 날, 이 부자 집 주인은 몇 사람의 하인을 대동하여 가마를 타고
'행복한 집’을 찾아 떠났읍니다.
그런데, 물어물어 그 집을 찾아 갈수록 의문은 더욱 커져만 갔읍니다.
화려하고 큰 집들이 많은 그런 번화한 마을들은 점점 멀어만 가고
자꾸자꾸 깊은 산 골 안으로만 들어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언제부터인가는 길다운 길도 끊어지고 가마조차 타고 갈 수 없는 좁은 오솔길이어서
하는 수 없이 가마도 버리고 걸어서 작은 개울가 돌투성이인 길을 가야 했읍니다.
때로는 개울을 건너기 위해 발을 적셔야 했고,
별안간 날아오르는 산 꿩의 울음소리에 놀라기도 하면서
거의 저녁 때 다 되어서야 그 집을 찾을 수가 있었답니다.
그런데 그 곳에는 이 부자 집 주인네의 변소(= 화장실)만도 못 한,
거의 다 쓰러질 듯한 초라한 집이 한 채 있을 뿐이었읍니다.
속으로 은근히 화가 난 이 부자는 하인들이 자기를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이런 곳으로 끌고 온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까지 일어났읍니다.
그러나 이런 기분을 애써 속으로 감추며 하인을 시켜 그 집 주인을 부르게 했읍니다.
주인을 찾는 낯 선 사람들의 부름에, 그 초라한 집 주인이 곧 밖으로 나왔읍니다.
그런데 그 주인은 낯선 사람들이 두렵지 않은 듯 웃으며 반갑게 맞이하면서
“아이고 이런! 귀하신 양반님네가 산 중에서 길을 잃으셨나 보군요.
어떻든 어서 들어오시지요.”하고 집 안으로 들기를 권하는 것이었읍니다.
부자 집 주인은 어쩔 수 없이 집 안으로 들어갔으나
방안은 이미 컴컴해서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읍니다.
그 초라한 집 주인은
“얘! 너 가서 막걸리 한 되 받아 오너라.”하고 누군가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것이었읍니다.
그러자 방 한 구석에서 열두세살쯤 되는 사내아이가 공손히
“예!”하고 일어서는 것이 보였읍니다.
그리고는 부인에게
“여보! 손님이 오셨는데 방이 너무 차서....”하자 그 부인 또한 공손하게
“예!”하면서 밖으로 나갔읍니다.
그리고는 울타리 옆에 조금 쌓여있던 장작들을 가져다 불을 지피기 시작했읍니다.
그제서야 그 부자 집 주인의 눈에 방 안에는 아직도 몇 명의 더 어린 아이들이
모두 방 한 구석에서 조용히 무릎 꿇고 가만히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읍니다.
다시 돌아가야 할 것을 생각하면 더 오랜 시간을 지체할 수 없을 것 같아
부자 집 주인은 바로 자기가 가지고 있던 의문을, 초라한 집 주인에게
“하도 소문이 자자해서 찾아 왔읍니다만, 이런 생활 형편인데도 어떻게 해서
‘행복한 집’이라 소문이 났는지.....?”하고 말 끝을 흐리며 물었읍니다.
그러나 초라한 집 주인은 그 말에는 대답을 아니하고,
아직도 어려 보이는 아이들에게 그리고 부인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읍니다.
“아무래도 방이 더 좀 따뜻해지려면 나무가 더 있어여 할 것 같은데.....
뒷산에 가서 나무 좀 해 오너라.”하고 말했읍니다.
그러자 부인과 아이들이 모두 주인의 분부대로 따르는 것이었읍니다.
그 초라한 집 주인은 이렇게 말했읍니다.
“우리 가족은 서로 이유를 따지지 않고 사는 것뿐이랍니다.
우리 큰 아이가 막걸리를 받으러 간 곳은 한 시오리쯤 되는 곳입니다.
그리고 이미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 했으니 올 때쯤이면 캄캄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무 말 아니하고 갔읍니다. 물론 제가 돈도 주지 않았으니
분명 외상으로 사 와야 하겠지요.
그리고 집 사람이 아궁이에 불 땐 나무는, 며칠 뒤 저희 조부님 제삿날에 쓰려고
아껴 두었던 나무입니다.
그런데도 집 사람은 그런 걸 따지지 않고, 내가 시키는 대로 아궁이에 넣었읍니다.
또 어린 아이들이 나무를 하러 가긴 했으나 그 어린 것들이 하면 얼마나 하겠읍니까?
그런데도 아무런 불평도 없이 따라 주었읍니다.
물론 막걸리 집 주인에게 외상값을 갚아야 하는 것도,
다시 더 많은 나무를 해 와야 하는 것도;
그리고, 이 산 골에서 혹 사나운 짐승이 나타나면 가족의 안전을 지켜야 하는 것 따위는
모두 제 책임이지요. 이렇게 우리 가족은 서로서로를 위하고 돕는 일에
이유를 따지지 않고 사는 것뿐이랍니다.
그런 것 밖에는 뭐 별다른 까닭이 없는데도
남들이 그렇게 말들을 하고 너무 소문들만 내어서......”
그제서야 부자 집 주인의 눈에
그 초라한 집 주인의 한쪽 팔이 팔꿈치부터 없는 것이 보였읍니다.
놀라서 쳐다보는 부자 집 주인의 시선을 의식한 듯 초라한 집 주인은
“아! ~ 이거요? 오래전에 멧돼지가 우리 큰 아이에게 달려들어
그 때 돼지하고 싸우다 다친 것이 잘 못되어 그만.....”하면서 허허 웃는 것이었읍니다.
무엇인가가 가슴 저 깊은 곳으로부터 서서히 치밀어 오름을 느낀 부자 집 주인은
자기 하인들을 불러 한 사람은 막걸리를 받으러 간 아이에게 마중을 가게하고
나머지는 부인과 아이들이 나무하러 간 뒷산으로 보냈읍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 집의 호롱불이 꺼지지 않았고
창 문 틈으로는 호쾌한 웃음소리와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말소리가 새어 나오곤 했읍니다.
밤이 이슥해서야 부자 집 주인이 밖으로 나왔읍니다.
마침 보름이 가까운 날이어서인지 달빛에 길을 읽을 수는 있었으나
이미 밖은 한 밤 중이었읍니다.
그런데도 올 때와는 다르게 부자 집 주인의 얼굴은 보름달만큼이나 밝았고
그 낯선 산 골 길을 되돌아가는 하인들의 얼굴들도
올 때와는 다른 얼굴들이 되어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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